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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1년이 지나 – 우리 몸 관찰 일기

4화. 1년이 지나 

6개월이면 시작한다는 배밀이를 우리 아기는 1년이 지난 후에야 시작했다. 마침내! 누워서 버둥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니. 그것도 헤벌쭉 웃으며 기어와 내 배 위로 쿵 머리도 박고! (아주 녹는다 녹아) 천장까지 번쩍 들어올리며 우리의 이 첫 순간을 기념했다. 조금 늦었다지만, 괜찮아! 대단해 아주! 

뒤로 뻗은 두 다리를 앞으로 여유롭게 반원을 그리며 오똑 앉는다. 그리곤 풀썩 앞으로 겁도 없이 몸을 던진다. 물고기마냥 두 다리를 길게 늘어뜨렸다가, 도마뱀처럼 손가락 발가락을 세우고 땅을 움켜쥐며, 양팔을 영차영차 앞으로 뻗으며 떠난다. 화장실로, 현관으로, 싱크대 밑으로.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건 왜 더 하고 싶은 건지. 생후 1년차 아기도 아나보다. 

잡고, 당기고, 밀고, 끌고, 뻗고, 구부리고, 흔들고, 비틀고, 돌리고, 던지고, 비비고, 구르고, 오르고, 떨어지고, 부딪치고, 미끄러지고. 살아있다는 건 움직이는 거란 걸 몸소 증명하듯 요즘 아기는 움직이느라 바쁘다. 앞으로 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움직임의 반경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힘이란 걸 쓰는 데 재미가 붙었는지 거침없이 이리저리 돌진한다. 화장실 문턱 위에 대롱대롱, 청소기와 빨래건조대를 꺼떡꺼떡, 수납장을 열어 반찬통을 뺐다 넣었다를 무한 반복한다. 난 설거지를 하다 말고 아기 위치를 확인하느라 꽤나 바빠졌고, 엄마와 이모들은 이제 드디어 놀이를 시작했다며 박수를 쳤다. 나는 왠지 1년새 등이 좀 굽은 것 같은데 말이지. 

아가를 돌보는 일엔 끝이 없고, 집안일은 미룰 수 없이 쏟아지는 매일이었다. ‘하는 것’이 굉장히 많은데도 ‘하는 것’ 없단 생각에 괴로웠던 날들이 자주 있었다. ‘예전의 나는’을 자꾸 되뇌이며, ‘나’라는 관념에 집착하고, 사라질까봐 불안해했다. 그러나 양육자가 되었다는 건 옷처럼 입고 벗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예 존재 자체가 변화한 것이었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듯이. 이 새로운 변화가 몸 속으로 들어와 다시 ‘내’가 되기까지, 이를 알아차리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돌이켜보니 길고도 짧은 시간 나는 참 많은 걸 배웠고 이루었다. 

그리고 이렇게 매일 안고 사는데 등이 굽는 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우리의 하루는 포옹에서 시작해 포옹으로 끝나므로. 이렇게 내가 아기에게 전달하는 움직임이란, 나는 너의 곁에 있다는 단순한 사실. 감싸 안고, 쓰다듬고, 들어 올리고, 간지럽히고, 앙 물고, 후후 불고, 톡톡 두드리고 뽀뽀하고, 볼 부비고, 바람소리를 내고, 비행기를 태우고, 배 위에서 흔들흔들, 등에 업고 둥기둥기. 

잠을 재울 땐 같이 모로 누워 엉덩이를 토닥토닥 거린다. 우는 아길 달래는 토닥임에 어루만지는 부드러움이 담겼다면, 아길 재우는 손에는 좀 더 무게가 실린다. (제발) 얼른 자라는 나의 희망과 요구가 담긴 무게. 근데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다. 느릿한 박자로 툭, 탁, 두드리는 순간에 지금 나처럼 누군가가 내 몸을 똑같이 두드렸던 기억이 살아난다. 고단함이 느껴지는 묵직한 손이 내 등 위로 천천히 툭. 이 손은 엄마다. 그 손처럼 나도 아기에게 툭. 손등은 거칠거칠하고 손바닥은 따뜻했던 할머니의 손. 다 큰 조카를 업고 둥기둥기 엉덩이를 두드리던 이모의 손. 아기를 토닥이며 재우는 사이, 나의 옛 기억들도 날 토닥거리기 시작한다. 물기어린 어떤 순간들이 파도처럼 스쳐가며, 아기를 재우는 손 위로 여럿 얼굴의 손들이 겹겹이 포개어진다.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함께 노는 모든 순간이 손에서 시작된다. 나도 촉각으로 세상을 처음 배웠겠지. 이순간 우리의 몸이 여기 함께 있다는 단단한 믿음을 가장 확실하게 전달하고 느낀다. 어느새 무뎌진 감각을 아기와 함께 다시 배우고 있다. 아기도 1년동안 얼마나 많은 품들 속에 있었던가. 크기도 느낌도 냄새도 제각각인 여럿 품 속을 세상 여행하듯 만났지. 그 품들을 기억하고, 받은 품을 또 나누어주길. 함께한 1년을 축하하며, 아기를 1년동안 꼬옥 안아준 여럿 품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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